입력:22/12/05수정:24/01/05

2021년까지의 크립토 역사

2008-2011 탐색단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사람이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시작했다. 매우 초창기에는 몇센트 정도에 거래되었다. 2012년까지 수십달러에 거래되었고 당시에는 P2P거래와 채굴 이외에는 거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마운트곡스가 등장했다

마운트곡스는 비트코인 거래소가 되기전 게임카드 거래소였다.

2012-2015 해킹사이클

2012년까지 마운트곡스 성장하는 비트코인 거래소였고 코인베이스, 코인마켓캡,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신탁등 여러 암호화폐 거래소, 지갑, 도구들이 등장했다.

실크로드와 같은 웹사이트들은 비트코인을 다른 상품과 교환할 수 있는 마켓을 만들었다. 하지만 비트코인 자산 관리의 중요성은 부재했는데 마운트곡스의 85만개를 포함해 100만개가 넘는 비트코인이 도난당하거나 분실됐다.

이후 미국은 비트코인 청문회를 열고 중국은 비트코인을 금지시켰으며 가격은 하락하고 많은 사람이 떠나갔다. 이 침체기동안 가장 위대한 프로젝트가 탄생했으니 이더리움이였다. 이더리움은 디지털 경제의 핵심이 될 스마트계약을 소개했다. 분산형 블록체인 위에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기술은 새로운 혁신의 사이클이었다.

2016-2019 ICO 사이클

이 기간 동안 이더리움은 가상화폐에 더 많은 프로그래밍적인 가능성을 제시해왔다. 특히 ICO는 자금 조달 도구임과 동시에 스캠토큰같은 사기의 도구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수 없이 많은 실현되지 않는 ICO 프로젝트들은 결국 수 많은 소액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혔고 결국 2017년 7월 SEC는 토큰이 증권이라는 판결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있는 규제에 불을 지폈다.

2017년 10월부터 긴축정책과 무역분쟁으로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2018년 1월 700B에서 2019년 초 105B으로 감소했다. 이 기간동안 탄생한 프로토콜 중 일부는 오늘날의 DeFi 생태계의 핵심요소가 되었다. 예를들어 유니스왑은 이전에 가능했던 어떤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탈중앙화 거래소를 탄생시켰고 수 많은 예금자들이 스마트컨트랙트를 통해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 같은 프로토콜은 2020년 DeFi 여름의 기반이 되었다.

2020~ 레버리지 사이클

CME의 비트코인 선물 출시와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양적완화는 수많은 자금이 가상화폐 시장으로 들어오게했고 DeFi들은 이렇게 들어온 자금으로 레버리지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레버리지를 일으키기 시작하면서 가상화폐의 가격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디파이간의 경쟁은 더 많은 이자율 경쟁을 만들었습니다. 한때 루나의 앵커프로토콜은 이자율이 20%에 육박했고 2021년 비트코인은 68,990달러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 초 연준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의 시작으로 스테이블 코인이 붕괴되는 루나 사태가 일어났고 이때 시장에서 발생한 자금경색은 차례로 3AC의 파산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3AC에 대출을 해준 보이저 캐피탈,블록파이등이 차례로 쓰러지며 가상화폐판 리먼사태라고 불리었습니다. 결국 11월에는 세계 3위의 거래소인 FTX가 고객자금을 유용하여 자회사의 손실을 만회하다 뱅크런 사태가 터지며 파산했습니다.


토픽: 그레이스케일,가상화폐,20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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